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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왕 사건’이 경찰 인사에 던진 법적·제도적 과제 - 사람에게 줄 서지 않아도 되는 경찰, 출신보다 실력과 청렴이 인정받는 경찰을 만들어야 한다
  • 기사등록 2026-09-22 2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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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왕 사건’이 경찰 인사에 던진 법적·제도적 과제

 

사람에게 줄 서지 않아도 되는 경찰, 출신보다 실력과 청렴이 인정받는 경찰을 만들어야 한다

 

법학박사 김원영


이른바 ‘거제왕 사건’으로 거제경찰서와 경남경찰이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한 경찰관을 둘러싸고 제기된 여러 비위 의혹은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에게 상처를 남겼고, 묵묵히 현장을 지켜온 수많은 경찰관들에게 허탈감과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현재 제기된 의혹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법적 책임은 수사와 감찰 결과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 또한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경찰의 인사는 정말 공정했는가.
열심히 일한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는 조직이었는가.

현장의 땀이 인사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경찰의 하루는 책상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한밤중 신고를 받고 뛰어나가고, 범인을 쫓고, 주취자의 욕설과 폭행 위험을 감수한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생명을 구조하고, 가정폭력과 학교폭력 현장에 출동하며 국민의 가장 위급한 순간을 지킨다.

명절에도 근무하고 가족과의 약속도 뒤로 미룬다.

승진시험을 준비하는 경찰관은 고된 근무를 마친 뒤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남들이 꺼리는 부서에서도 경력을 쌓고, 한 계급을 올라가기 위해 수년을 기다린다.

그렇게 경찰관의 계급장 하나에는 수많은 밤과 땀이 들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조직 안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열심히 하면 뭐 하나. 결국 누구를 아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이런 자조가 나온다면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인사에 대한 불신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을 조직이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경찰관의 자긍심은 무너지고 조직에 대한 신뢰도 흔들린다.

경찰 조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좌절하는 것이다.

몇 사람의 책임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 역시 특정 개인의 비위 여부만 규명하고 관련자를 문책하는 선에서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한 경찰관이 어떻게 오랫동안 특정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인식될 수 있었는가.

인사와 감찰 기능은 제대로 작동했는가.

조직 내부에서 문제를 알고도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는 없었는가.

누군가 문제를 제기했다면 조직은 그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않고 사람만 교체한다면 비슷한 문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관행과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인사제도와 장기근무, 순환보직, 감찰 기능, 내부 신고와 제보자 보호제도까지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출신이 평생의 기회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경찰에는 경찰대학, 경찰간부후보생, 순경 공채 등 여러 입직 경로가 있다.

각 제도는 저마다 역사와 역할이 있다.

그러나 경찰 생활을 어디에서 시작했느냐가 평생의 기회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경찰 조직의 뿌리는 결국 현장이다.

순경으로 시작해 파출소와 지구대에서 국민을 만나고, 형사·수사·교통·정보 등 여러 현장을 거치며 실력을 쌓아온 경찰관에게도 능력에 맞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순경 공채 출신에게 특혜를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출신 때문에 특혜를 받아서도 안 되고, 출신 때문에 기회를 잃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경찰대학 출신이든, 간부후보 출신이든, 순경 공채 출신이든 경찰관으로서 능력과 청렴성, 전문성과 현장 경험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출발선은 달랐을 수 있다.

그러나 조직에서의 기회만큼은 공정해야 한다.

 

인사권은 신뢰를 먹고 산다

 


인사권자에게는 조직 운영을 위한 재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재량은 자의가 아니다.

누구를 승진시키고 누구를 핵심 보직에 배치할 것인가는 조직 구성원에게 매우 민감한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모든 경찰관을 승진시킬 수는 없다.

모두가 원하는 자리에 갈 수도 없다.

그러나 탈락한 사람도 최소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는 아쉽지만 과정은 공정했다.”

 

그것이 조직에 대한 신뢰다.

반대로 “능력보다 인맥이 중요하다”, “누구와 가깝느냐에 따라 기회가 달라진다”는 의심이 퍼진다면 아무리 좋은 인사제도를 만들어도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순환보직과 감찰이 살아 있어야 한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부서에서 한 사람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형성되지 않도록 순환보직도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특히 인사·감찰 등 조직 내부에 영향력이 큰 핵심 보직은 더욱 엄격한 기준과 투명한 절차가 필요하다.

감찰 역시 마찬가지다.

감찰은 문제가 터진 뒤 책임자를 찾아내는 기능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조직 내부의 위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예방 기능을 해야 한다.

인사 청탁이나 부당한 개입이 확인된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원칙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내부 제보자가 “말하면 내가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보호제도 역시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침묵하는 조직보다 문제를 말할 수 있는 조직이 강한 조직이다.

 

경찰의 공정은 경찰 내부에서 시작된다

경찰은 국민에게 법과 원칙을 이야기한다.

공정과 정의를 지키라고 요구하고 때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공권력도 행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 스스로 더욱 공정해야 한다.

특히 인사가 공정해야 한다.

조직 구성원조차 자신의 승진과 보직 인사를 믿지 못한다면 국민에게 공정을 이야기하는 경찰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기 어렵다.

 

이번 사건을 몇 사람의 잘못으로 봉합해서는 안 된다.

제기된 의혹은 수사와 감찰을 통해 사실관계를 철저히 규명하되, 동시에 경찰의 인사 시스템과 조직문화도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과감하게 걷어내야 한다.

경남경찰 지휘부에도 당부한다.

출신이 기회를 결정한다는 의심을 받는 인사를 끝내야 한다.
인맥이 실력을 이긴다는 불신을 낳는 인사를 끝내야 한다.

그리고 묵묵히 현장을 지킨 경찰관의 땀과 능력이 제대로 평가받는 인사를 만들어야 한다.

거제경찰서와 동료 경찰관들이 입은 상처를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이 몇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찰이 스스로의 인사와 조직문화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공정하고 더 당당한 경찰로 다시 서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사람에게 줄 서지 않아도 되는 경찰.
출신보다 실력이 인정받는 경찰.
인맥보다 청렴과 능력이 평가받는 경찰.
묵묵히 일한 사람이 당당하게 기회를 얻는 경찰.

현장을 지키는 경찰관들이 바라는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
실력이 있으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조직이 나의 땀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 믿음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 상처 입은 동료들에게 경남경찰이 내놓아야 할 답이며, 이번 사건이 대한민국 경찰에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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